게임 현지화(로컬라이제이션)의 역사와 방법, 번역과 무엇이 다른가
Zero Wing의 "All your base are belong to us"부터 포켓몬 이름 바꾸기, 스타크래프트 한글 문제, 더빙과 검수, 팬 번역 패치까지 게임 현지화의 역사와 작업 방법을 정리했습니다.
해외 게임을 한국어로 즐길 수 있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게임 속 글자와 목소리를 다른 나라 사람에게 맞게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고, 그 과정에는 웃음거리가 된 실패와 오랜 시행착오가 함께 쌓여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게임 현지화(로컬라이제이션)가 무엇이고 단순한 번역과 어떻게 다른지, 초기의 엉터리 번역에서 지금의 다국어 동시 출시까지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살펴봅니다. 한국어 한글화가 걸어온 길, 글꼴과 텍스트 길이 같은 기술 문제, 음성 더빙과 문화 차이 조정, 품질 검수(QA), 그리고 팬들이 직접 만든 번역 패치까지 차례로 정리합니다.
게임 현지화란 무엇인가
게임 현지화는 처음 출시된 지역이 아닌 다른 시장을 위해 게임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영어 위키백과는 이 과정에서 게임 제목, 그림 자료, 포장, 설명서, 그리고 문화적·법적 차이가 바뀌는 것이 보통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글자를 옮기는 번역은 현지화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현지화는 게임 역사의 아주 이른 시기부터 있었습니다. 1980년 남코가 일본에서 낸 아케이드 게임의 원래 제목은 '퍽맨(Puck Man)'이었습니다. 미국에 들여올 때 'Puck'의 글자 일부가 낙서로 고쳐져 비속어가 될 것을 걱정해 제목을 '팩맨(Pac-Man)'으로 바꿨습니다. 유령들의 이름도 일본어 원래 뜻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블링키, 핑키, 잉키, 클라이드라는 영어 이름으로 새로 지었습니다. 뜻보다 느낌을 살린, 초기 현지화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초기의 엉터리 번역: "All your base are belong to us"
1980~1990년대에는 번역이 회사의 우선순위가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산이 적고 일정이 짧아, 전문 번역가가 아닌 사람이 영어 문장을 만드는 일도 있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토아플랜의 슈팅 게임 제로 윙(Zero Wing)입니다. 이 게임은 1989년 일본 아케이드에 나왔고, 1991년 유럽에 메가 드라이브판이 출시되었습니다. 이 메가 드라이브판의 오프닝에서 악당 CATS가 한 말이 "All your base are belong to us"라는, 문법이 완전히 무너진 영어 문장이었습니다. 원래 일본어 대사는 "너희들의 기지는 모두 CATS가 차지했다" 정도의 뜻입니다.
제작진 중 한 사람인 우에무라 다쓰야는 2010년대 인터뷰에서, 이 번역을 맡은 사람은 전문 번역가가 아니라 수출 업무를 담당하던 디자인팀 직원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장면은 1999년 무렵부터 인터넷 게시판에 퍼졌고, 2001년 뉴그라운즈에 올라온 음악 영상으로 크게 유행하면서 초기 인터넷 밈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잘못된 번역 한 줄이 게임 자체보다 더 오래 기억된 셈입니다.
번역과 현지화의 차이: 이름과 이야기를 바꾸는 일
번역이 "무슨 말을 했는가"를 옮긴다면, 현지화는 "현지 플레이어가 원작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 하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를 고민합니다. 이 차이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이름입니다.
포켓몬스터의 첫 작품(일본 1996년)에 나오는 '후시기다네(フシギダネ)'는 '이상함(후시기)'과 '씨앗(타네)'을 합친 이름입니다. 영어판(북미 1998년)에서는 이를 그대로 옮기지 않고, 공룡 같은 생김새와 등에 달린 알뿌리를 살려 'Bulbasaur'라는 새 이름을 붙였습니다. 한국어 이름 '이상해씨'는 반대로 일본어 이름의 뜻을 그대로 살려 '이상하다'와 '씨'를 합친 말입니다. 같은 캐릭터라도 나라마다 이름을 만드는 방향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 줍니다.
이야기와 표현을 다듬는 일도 현지화에 포함됩니다. 1990년대 스퀘어의 북미 번역을 맡은 테드 울시(Ted Woolsey)는 파이널 판타지 VI, 크로노 트리거 등을 옮기면서, 카트리지의 작은 저장 공간과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의 엄격한 표현 규정 때문에 대사를 계속 줄이고 고쳐 써야 했습니다. 때로는 아예 게임의 주제를 바꾸기도 합니다. 일본 응원단 문화를 소재로 한 닌텐도 DS 리듬 게임 「押忍! 闘え! 応援団」은 그대로 옮기기 어렵다고 판단되어, 같은 게임 방식에 특수 요원이 사람들을 돕는 이야기를 입힌 엘리트 비트 에이전트(Elite Beat Agents)라는 별도 작품으로 서양에 나왔습니다.
현지화의 범위와 진행 방식
모든 게임이 같은 수준으로 현지화되지는 않습니다. 영어 위키백과는 현지화 범위를 대략 네 가지로 나눕니다.
| 범위 | 바꾸는 것 | 주로 쓰이는 경우 |
|---|---|---|
| 현지화 없음 | 거의 없음 | 원어 그대로 해외에 출시 |
| 포장·설명서 현지화 | 상자와 설명서만 번역 | 아케이드 게임, 원어를 아는 사람이 많은 지역 |
| 부분 현지화 | 게임 안 텍스트 번역, 음성은 원어 유지 | 일본 RPG, 비주얼 노벨 등 |
| 완전 현지화 | 텍스트와 음성까지 모두 현지 언어로 | 대형(AAA) 게임 |
진행 시점도 두 가지로 나뉩니다. 포스트 골드(post-gold)는 원작이 완성된 뒤에 현지화를 시작하는 방식으로, 완성된 게임을 직접 해 보며 꼼꼼히 옮길 수 있지만 해외 출시가 늦어집니다. 심십(sim-ship, 동시 출시)은 개발 중에 현지화를 함께 진행해 여러 나라에 동시에 내는 방식입니다. 출시 공백을 줄일 수 있지만, 번역가가 완성되지 않은 게임을 맥락 없이 옮겨야 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외부 전문 업체에 맡길 때는 개발사가 '현지화 키트'를 넘겨줍니다. 일정과 연락처, 줄거리와 캐릭터 설명, 공략, 용어집, 번역할 파일 등이 들어갑니다. 게임을 모르는 채 문장만 받아 옮기는 이른바 '블라인드 현지화'를 막기 위한 장치입니다.
한국어 한글화가 걸어온 길
한국에서 해외 게임의 한국어화는 공식 출시보다 팬들의 손에서 먼저 시작된 면이 있습니다. 영어 위키백과의 팬 번역 문서에 따르면, 1996년 무렵부터 일본 회사 엘프(ELF)의 DOS용 PC 게임을 한국어로 옮긴 팬 번역이 많이 나왔고, 엘프는 나중에 이 번역 팀 일부를 고용해 공식 한국어판을 냈습니다.
공식 출시 게임이라도 한국어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스타크래프트입니다. 한국에서는 LG소프트를 통해 영문판 그대로 발매되었는데, 게임 안에서 한글을 입력하면 깨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1999년부터 한글 표시와 번역 기능을 더한 '한스타' 같은 프로그램이 널리 쓰였고, 게임이 2005년 2월 1.12 버전으로 업데이트되면서 한글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2017년 출시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는 처음부터 한국어를 포함한 13개 언어를 지원했습니다.
콘솔 쪽에서는 한국 지사의 등장이 큰 계기였습니다. 포켓몬스터 금·은은 일본에서 1999년에 나왔지만 한국에는 2002년에 발매되었습니다. 2006년 7월 서울에 한국닌텐도가 세워졌고, 2007년 1월 한글판 닌텐도 DS Lite를 시작으로 기기와 정식 발매 소프트웨어를 완전 또는 부분 한글화해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한국닌텐도는 2015년 일부 게임의 번역 품질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한글화가 '있느냐'에서 '얼마나 잘했느냐'로 기준이 옮겨 갔음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글꼴, 텍스트 길이, UI 문제
현지화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은 글자 자체입니다. 한국어는 한글 글자 마디만 해도 조합할 수 있는 수가 많습니다. 한국 산업 규격 KS X 1001(옛 KS C 5601)은 자주 쓰는 한글 2,350자만 담았기 때문에, 이 범위를 벗어난 글자가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 문제가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지금은 유니코드를 쓰는 게임이 대부분이지만, 글꼴 파일에 필요한 글자가 빠져 있으면 여전히 네모 칸이나 깨진 글자가 나옵니다.
텍스트 길이도 큰 문제입니다. 화면의 글자 공간은 보통 원래 언어에 맞춰 정해지는데, 독일어처럼 같은 뜻을 길게 쓰는 언어로 옮기면 버튼이나 말풍선 밖으로 글자가 넘칩니다. 그래서 현지화를 염두에 둔 게임은 다음과 같은 점을 미리 준비합니다.
- 버튼과 상자 크기를 글자 길이에 따라 늘어나게 만들기
- 그림 속에 글자를 박아 넣지 않고 텍스트로 따로 관리하기
- 한국어 조사(을/를, 이/가)처럼 앞말에 따라 바뀌는 문법을 처리할 수 있게 문장 조각 대신 완성된 문장 단위로 번역 파일 만들기
- 날짜, 숫자, 통화 표기를 지역 설정에 맞춰 바꾸기
- 플레이어가 직접 이름을 입력할 수 있다면 그 언어의 특수 문자까지 받을 수 있게 하기
음성 더빙과 컬처라이제이션
2000년대 들어 게임에 음성이 본격적으로 들어가면서 현지화는 한층 어려워졌습니다. 새로 녹음할지 원어 음성을 유지할지 정해야 하고, 영상 연출이 발전하면서 새 대사를 캐릭터의 입 모양에 맞추는 일도 중요해졌습니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페이블 II를 5개 언어로 현지화하는 데 배우 270명과 인력 130명이 참여했고, 스타워즈: 구 공화국의 대사 대본은 20만 줄이 넘었습니다.
문화와 법의 차이에 맞춰 내용을 고치는 일은 '컬처라이제이션(culturalization)'이라고 부릅니다. 지역마다 등급 기관(유럽 PEGI, 북미 ESRB, 일본 CERO 등)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게임이 다른 모습으로 출시되기도 합니다.
- 독일: 등급 기관 USK의 엄격한 기준 때문에 팀 포트리스 2(2007) 독일판은 피와 신체 훼손 표현을 없앴습니다. 울펜슈타인(2009) 독일판은 나치 상징을 지웠지만 그림 자료 하나에 하켄크로이츠가 남아 회수되었습니다.
- 중국: 하츠 오브 아이언(2002)은 지도에 일부 지역을 독립국으로 표시했다는 이유로 판매가 금지되었습니다.
- 캐릭터 표현: 공포 게임 제로(북미명 Fatal Frame)는 서양판에서 주인공의 나이와 생김새, 옷차림을 바꿨습니다.
지정학 전략가 케이트 에드워즈는 2006년 GDC에서 게임 속 문화적 표현의 균형에 관해 발표하며 이 분야를 알렸습니다. 많은 게임이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삼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런 민감한 문제를 피하기 쉽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현지화 QA와 팬 번역 패치
번역이 끝나도 일은 끝나지 않습니다. 현지화 QA(품질 검수)에서는 검수자가 실제로 게임을 하며 오역, 용어 불일치, 글자 잘림과 겹침, 깨진 글자, 맥락에 맞지 않는 말투, 문화적으로 문제가 될 표현을 찾아냅니다. 화면에 띄워 봐야만 알 수 있는 문제가 많기 때문에, 번역 파일만 보는 검토로는 부족합니다. 용어집과 문체 안내서를 미리 만들어 두면 여러 번역가가 참여해도 표현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공식 현지화가 나오지 않거나 품질이 기대에 못 미치면 팬들이 나서기도 합니다. 기록에 남은 초기 사례로는 네덜란드 팬 그룹 오아시스(Oasis)가 1993년 4월 MSX용 SD 스내처를 영어로 옮긴 작업이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에뮬레이터가 보급되면서 팬 번역은 크게 늘었고, 팬 그룹 RPGe는 1997년 10월 파이널 판타지 V의 영어 번역 패치를 완성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마더 3입니다. 2006년 일본에서만 나온 이 게임을 위해 팬 사이트 Starmen.net은 약 2년에 걸쳐 영어 번역을 진행했고, 2008년 10월 공개된 패치는 첫 주에만 10만 회 넘게 내려받아졌습니다. 이 번역은 이후 한국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로 다시 옮겨지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캡콤의 대역전재판처럼 팬 번역으로 확인된 해외 수요가 공식 해외 출시로 이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팬 번역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만든 것이 대부분이어서, 공식 판 발표를 앞두고 중단 요청을 받는 일도 있습니다.
게임 현지화의 역사는 결국 "다른 나라 플레이어도 원작과 같은 재미를 느끼게 하려면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 온 과정입니다. 한 줄의 엉터리 번역이 밈이 되던 시절에서, 이제는 개발 초기부터 여러 언어를 함께 설계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