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의 역사: 1889년 화투 가게에서 스위치까지 회사가 걸어온 길
1889년 교토의 화투 회사로 출발한 닌텐도가 장난감, 게임 & 워치, 패미컴, DS·Wii, 스위치를 거쳐 온 과정을 회사의 선택과 개발 철학 중심으로 정리합니다.
닌텐도는 마리오와 젤다, 포켓몬의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비디오 게임을 만든 기간보다 그 이전의 역사가 더 깁니다. 회사는 1889년 일본 교토에서 화투(일본어로 하나후다)를 만드는 작은 가게로 시작했고, 카드 회사에서 장난감 회사로, 다시 게임기 회사로 몇 번이나 모습을 바꿨습니다.
이 글에서는 개별 게임이 아니라 회사의 관점에서 닌텐도의 130여 년을 따라갑니다. 어떤 위기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성공과 실패가 어떻게 번갈아 찾아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굳어진 개발 철학이 무엇인지 차례로 살펴봅니다. 개별 기기와 게임 이야기는 따로 쓴 글에서 다뤘으니, 여기서는 회사의 흐름에 집중합니다.
화투 가게에서 출발한 회사 (1889~1960년대)
닌텐도는 1889년 9월 23일 야마우치 후사지로가 교토에서 세운 가게에서 시작했습니다. 처음 이름은 '닌텐도 곳파이(任天堂骨牌)'로, '곳파이(골패)'는 카드 같은 놀이 도구를 뜻합니다. 이 가게가 만든 것은 열두 달의 꽃과 풀을 그린 48장짜리 카드, 하나후다였습니다. 하나후다가 한국에 들어와 화투가 된 과정은 화투와 고스톱의 역사에서 따로 정리했습니다.
'닌텐도(任天堂)'라는 이름은 흔히 "운은 하늘에 맡긴다"는 뜻으로 풀이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당시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확실한 것은 이 회사의 카드가 인기를 얻어 직원을 두고 대량 생산을 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경영은 가족 안에서 이어졌습니다. 후사지로에게 아들이 없어 사위인 가네다 세키료가 데릴사위로 들어와 1929년 2대 사장이 되었고, 1949년에는 세키료의 손자인 야마우치 히로시가 대학을 그만두고 3대 사장이 되었습니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2002년까지 50년 넘게 회사를 이끌며 닌텐도를 카드 회사에서 세계적인 게임 회사로 바꿔 놓은 인물입니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먼저 카드 사업을 넓혔습니다. 1953년에는 일본 최초로 플라스틱 트럼프를 만들었고, 이어 디즈니와 계약해 디즈니 캐릭터를 넣은 트럼프를 내놓았습니다. 그때까지 카드는 도박 도구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디즈니 캐릭터와 놀이 방법을 담은 책을 함께 팔면서 가정용 놀이 도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회사는 1962년 주식 시장에 상장했습니다.
하지만 야마우치는 1956년 미국 최대 카드 회사를 방문했을 때 그 회사가 작은 사무실을 쓰는 것을 보고 카드 사업의 한계를 실감했습니다. 1963년 회사 이름을 '닌텐도 곳파이'에서 지금의 '닌텐도'로 바꾼 뒤, 회사는 여러 분야에 손을 댔습니다. 택시 회사, 인스턴트 식품, 진공청소기 같은 사업이었지만 모두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60년대 중반 카드 수요가 줄어들자 주가도 크게 떨어졌습니다.
결국 성과를 낸 것은 카드 사업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장난감이었습니다.
장난감과 전자 놀이: 울트라 핸드에서 게임 & 워치까지
전환점은 한 명의 기술자였습니다. 1965년 생산 설비 정비 담당으로 입사한 요코이 군페이가 재미 삼아 만든 늘어나는 팔 모양 장난감을 야마우치가 보고 상품으로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1966년 '울트라 핸드'라는 이름으로 나온 이 장난감이 큰 인기를 끌면서, 요코이는 개발 부서로 옮겨 장난감을 연이어 만들었습니다. 공을 던지는 기계 '울트라 머신', 손을 잡고 애정도를 재는 '러브 테스터'가 이 시기의 제품입니다.
닌텐도는 점차 전자 기술을 쓴 놀이로 옮겨 갔습니다. 주요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 1970년 광선총 시리즈: 샤프와 협력해 빛을 쏘아 과녁을 맞히는 가정용 장난감을 만들었습니다.
- 1973년 레이저 클레이 사격 시스템: 문을 닫은 볼링장을 사격장으로 바꾼 대형 놀이 시설로, 광선총 기술을 그대로 썼습니다.
- 1977년 컬러 TV 게임: 미쓰비시 전기와 함께 만든 가정용 게임기 시리즈입니다. '컬러 TV 게임 6', '15'처럼 이름의 숫자는 들어 있는 게임 수를 뜻합니다.
- 1980년 게임 & 워치: 계산기용 액정 화면에 게임과 시계를 넣은 휴대용 전자 게임입니다. 기기 하나에 게임 하나만 들어 있었지만 닌텐도의 첫 대형 히트 전자 제품이 되었습니다.
- 1981년 「동키콩」: 미야모토 시게루가 디자인한 아케이드 게임으로, 닌텐도의 첫 세계적 히트작이자 마리오가 처음 등장한 작품입니다.
이 무렵 닌텐도는 장난감, 아케이드 게임, 휴대용 전자 게임을 함께 하는 회사였습니다.
패미컴과 NES: 게임기 회사가 되다
1983년 7월 15일, 닌텐도는 일본에서 카트리지를 갈아 끼우는 가정용 게임기 '패밀리 컴퓨터(패미컴)'를 내놓았습니다. 같은 해 북미에서는 질 낮은 게임이 쏟아지며 게임 시장이 무너지는 이른바 '아타리 쇼크'가 일어났습니다. 미국 판매를 아타리에 맡기려던 협상도 결렬되자, 닌텐도는 직접 북미에 진출하기로 합니다.
1985년 북미에서 나온 이름은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NES)'이었습니다. 게임기라는 인상을 피하려고 일부러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라는 말을 쓰고, 비디오 플레이어처럼 보이는 회색 상자 모양으로 디자인했습니다. 회사는 시장 붕괴의 원인 중 하나를 품질 관리가 안 된 게임으로 보고, 닌텐도의 허가를 받은 회사만 게임을 낼 수 있도록 카트리지에 인증 칩을 넣었습니다. 허가받은 게임에는 '품질 보증 마크'를 붙였습니다.
이 구조는 이후 게임기 사업의 기본 모델이 되었습니다. 기기를 만드는 회사가 직접 대표작을 내고, 다른 회사의 게임에서 라이선스 수익을 얻는 방식입니다. 「슈퍼 마리오브라더스」(1985)와 「젤다의 전설」(1986)이 이 시기에 나왔고, 닌텐도는 사실상 '게임 회사'가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1985년 말 아케이드 게임 생산과 판매를 그만두고 가정용 시장에 집중했습니다.
휴대기의 강자, 거치기의 고전 (1989~2003)
1989년 나온 게임보이는 닌텐도 휴대기 시대를 열었습니다. 게임보이 이야기는 게임보이의 역사에서 자세히 다뤘으니, 여기서는 회사 전체의 흐름을 봅니다.
1990년 슈퍼 패미컴(북미 SNES)이 나오면서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와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세가는 미국에서 10대를 겨냥한 공격적인 광고로 시장 점유율을 크게 끌어올렸고, 닌텐도는 다른 게임기에 같은 게임을 내지 못하게 하던 엄격한 라이선스 조건 일부를 풀어야 했습니다.
더 큰 변화는 1990년대 중반에 찾아왔습니다. 닌텐도는 슈퍼 패미컴용 CD-ROM 장치를 소니와 함께 개발하다가 계약 문제로 협력을 끝냈는데, 소니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1994년 플레이스테이션을 내놓았습니다. 1995년에는 요코이 군페이가 설계한 3D 게임기 '버추얼 보이'가 크게 실패했습니다. 빨간색 단색 입체 화면이 눈의 피로를 불렀고, 출시된 게임도 22개에 그쳤습니다.
1996년 닌텐도 64는 「슈퍼 마리오 64」로 3D 게임의 조작 기준을 세웠지만, 저장 매체로 카트리지를 고집하면서 제작비가 싼 CD를 원한 외부 개발사들이 다른 게임기로 옮겨 갔습니다. 2001년 나온 게임큐브도 상황을 바꾸지 못해, 당시까지 닌텐도 거치형 게임기 가운데 가장 적게 팔린 기기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회사가 흔들리지 않은 이유는 휴대기였습니다. 게임보이 시리즈와 1996년 시작된 「포켓몬스터」, 2001년의 게임보이 어드밴스가 휴대용 시장을 사실상 독차지하면서 거치기의 부진을 메웠습니다.
DS와 Wii: '게임 인구의 확대'
2002년 야마우치 히로시는 HAL 연구소 사장 출신의 프로그래머 이와타 사토루를 4대 사장으로 지명했습니다. 창업 이후 처음으로 야마우치 가문이 아닌 사람이 사장이 된 것입니다.
이와타는 일본에서 사람들이 게임을 떠나는 '게임 이탈' 현상을 위기로 보고, 기존 게이머와 처음 게임을 하는 사람이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는 기기를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회사는 이 방향을 '게임 인구의 확대'라고 불렀습니다.
- 닌텐도 DS(2004): 두 개의 화면 중 하나를 터치스크린으로 만들고, 펜으로 누르기만 하면 되는 조작을 앞세웠습니다. 두뇌 트레이닝, 요리, 어학처럼 게임에 관심 없던 사람을 위한 소프트웨어가 이어졌습니다.
- Wii(2006): 그래픽 성능 경쟁 대신 TV 리모컨처럼 생긴 동작 인식 컨트롤러를 내세웠습니다. 휘두르면 그대로 움직이는 조작 덕분에 가족 단위로 즐기는 사람이 크게 늘었습니다.
두 기기는 모두 경쟁 기기보다 성능이 낮았지만, 닌텐도 역사상 손꼽히는 판매 기록을 남겼습니다.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2010년 무렵 비슷한 동작 인식 장치를 내놓은 것도 이 흐름의 영향이었습니다.
Wii U의 부진과 스위치의 성공
성공 뒤에는 다시 어려움이 왔습니다. 2011년 나온 닌텐도 3DS는 초반 판매가 부진해 출시 반년도 안 되어 가격을 크게 내렸고, Wii 판매도 줄어들면서 닌텐도는 2012년 3월 끝난 회계연도에 영업 적자를 냈습니다. 같은 해 나온 Wii U는 화면이 달린 게임패드를 내세웠지만, 새 게임기가 아니라 Wii의 주변기기로 오해받기도 했습니다. 이와타 사장도 제품을 충분히 이해시키지 못했다고 인정했고, Wii U의 누적 판매는 1,356만 대에 그쳤습니다.
이 시기 닌텐도는 스마트폰 게임에도 발을 들였습니다. 2015년 모바일 기업 DeNA와 손을 잡았고, 2016년 「Miitomo」와 「슈퍼 마리오 런」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와타 사장은 2015년 7월 55세로 세상을 떠났고, 기미시마 다쓰미가 뒤를 이었습니다.
2017년 3월 3일 출시된 닌텐도 스위치는 이와타 시절부터 준비된 기기입니다. TV에 연결하는 거치기와 들고 다니는 휴대기를 하나로 합친 구조로, 거치기와 휴대기를 따로 내던 닌텐도의 오랜 방식을 하나로 합친 기기입니다. 2018년부터는 후루카와 슌타로가 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2025년 6월 5일에는 후속기 닌텐도 스위치 2가 나왔습니다.
최근 닌텐도는 게임 밖으로도 활동을 넓히고 있습니다. 2023년 애니메이션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개봉했고, 2024년 10월에는 옛 트럼프·화투 공장이 있던 교토부 우지시에 '닌텐도 뮤지엄'을 열었습니다. 화투 회사로 출발한 역사를 직접 보여 주는 공간입니다.
연도별 주요 하드웨어와 판매량
아래 표는 닌텐도 공식 IR 자료에 실린 전 세계 누적 판매 대수입니다. 출시일은 가장 먼저 발매된 지역 기준입니다. 공식 수치가 공개되지 않은 기기는 '—'로 표시했습니다.
| 출시 | 하드웨어 | 형태 | 누적 판매(공식) |
|---|---|---|---|
| 1980 | 게임 & 워치 | 휴대 | — |
| 1983 | 패밀리 컴퓨터 / NES | 거치 | 6,191만 대 |
| 1989 | 게임보이 (게임보이 컬러 포함) | 휴대 | 1억 1,869만 대 |
| 1990 | 슈퍼 패미컴 / SNES | 거치 | 4,910만 대 |
| 1995 | 버추얼 보이 | 거치(입체) | — |
| 1996 | 닌텐도 64 | 거치 | 3,293만 대 |
| 2001 | 게임보이 어드밴스 | 휴대 | 8,151만 대 |
| 2001 | 닌텐도 게임큐브 | 거치 | 2,174만 대 |
| 2004 | 닌텐도 DS | 휴대 | 1억 5,402만 대 |
| 2006 | Wii | 거치 | 1억 163만 대 |
| 2011 | 닌텐도 3DS | 휴대 | 7,594만 대 |
| 2012 | Wii U | 거치 | 1,356만 대 |
| 2017 | 닌텐도 스위치 | 하이브리드 | 1억 5,659만 대 |
| 2025 | 닌텐도 스위치 2 | 하이브리드 | 2,368만 대 |
※ 스위치와 스위치 2는 2026년 6월 말 기준이며, 이후 계속 늘어나는 수치입니다.
표를 보면 흐름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성능 경쟁에서 뒤처진 닌텐도 64와 게임큐브, 개념 전달에 실패한 Wii U는 판매가 적었고, 새로운 놀이 방식을 쉽게 보여 준 게임보이, DS, Wii, 스위치는 1억 대를 넘겼습니다. 거치기가 부진한 시기에는 휴대기가 회사를 받쳤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닌텐도를 움직여 온 개발 철학
닌텐도의 선택에는 몇 가지 반복되는 생각이 있습니다.
시든 기술의 수평 사고. 요코이 군페이가 남긴 말로, '시든 기술'은 이미 널리 쓰여 장단점이 다 알려진 기술을, '수평 사고'는 그것을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쓰는 발상을 뜻합니다. 계산기용 액정으로 만든 게임 & 워치, 싸고 튼튼한 흑백 화면을 고른 게임보이가 대표적입니다. 이 생각은 버추얼 보이처럼 실패로 끝나기도 했지만, DS의 터치스크린과 Wii의 동작 인식처럼 최신 사양 대신 새로운 사용법으로 승부하는 방향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만든다. 이와타 사토루는 2011년 게임 개발자 회의에서 닌텐도가 게임기를 "꼭 하고 싶은 소프트웨어를 즐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는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닌텐도는 자사 게임을 다른 회사 게임기에 내지 않고, 기기를 설계할 때부터 그 기기에서만 가능한 게임을 함께 구상해 왔습니다.
튼튼함과 쉬운 조작. 아이들이 주요 사용자인 만큼 떨어뜨려도 잘 고장 나지 않는 내구성을 중시합니다. 하드웨어 개발 책임자였던 다케다 겐요는 아이가 "내가 망가뜨렸다"가 아니라 "저절로 고장 났다"고 느끼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설계한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게임 & 워치에서 처음 쓰인 십자 버튼처럼, 설명 없이도 손에 익는 조작을 찾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놀이의 범위를 넓힌다. 화투와 트럼프, 장난감, 게임기, 영화와 테마파크까지, 닌텐도는 시대마다 형태를 바꾸면서도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놀이"를 만든다는 영역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다각화가 실패했던 1960년대와 달리, 오늘날의 확장은 자사 캐릭터와 놀이 경험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130여 년 동안 닌텐도는 여러 번 위기를 맞았지만, 그때마다 경쟁사와 같은 길을 따라가기보다 다른 방향의 놀이를 내놓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 선택이 늘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회사의 정체성을 만든 것은 분명 그 반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