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맨(Pac-Man) 이야기 — 1980년 남코 아케이드 게임이 세계적 아이콘이 되기까지
피자에서 영감을 얻은 노란 캐릭터 팩맨. 1980년 남코가 만든 미로 게임의 탄생 배경, 네 유령의 규칙, 명작으로 꼽히는 이유, 시리즈와 지금 즐기는 방법을 정리했습니다.
팩맨은 1980년 일본 남코가 만들어 아케이드로 내놓은 미로 게임입니다. 노란 동그라미 모양 주인공이 미로 안의 점을 모두 먹는 동안 네 마리 유령을 피해야 하는, 설명 한 줄로 끝나는 규칙이지만 오락실 역사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처음 나올 때 이름은 "퍽맨(Puck Man)"이었습니다. 무언가를 덥석덥석 먹는 모습을 뜻하는 일본어 의성어 "파쿠파쿠"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이 글에서는 팩맨이 어떤 생각에서 만들어졌는지, 유령들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왜 지금까지 명작으로 불리는지, 그리고 오늘날 어디서 즐길 수 있는지 정리합니다.
한눈에 보기
| 항목 | 내용 |
|---|---|
| 첫 출시 | 1980년 5월 22일 (일본, 아케이드) / 1980년 10월 (북미) |
| 개발 | 남코 (기획 이와타니 토루) |
| 배급 | 남코 (일본), 미드웨이 (북미) |
| 플랫폼 | 아케이드, 이후 아타리 2600·패미컴 등 가정용 게임기와 PC, 휴대폰 |
| 장르 | 미로 추격 액션 |
| 기록 | 누적 매출 140억 달러 이상, 합산 판매 4,300만 장 (2016년 기준) |
탄생 배경
남코는 1974년 경영이 어렵던 아타리 일본 법인을 인수한 뒤, 다른 회사 게임을 들여와 유통하는 대신 직접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개발 부서에 들어간 사람 가운데 하나가 당시 24세였던 이와타니 토루입니다. 그는 1978년 남코의 첫 비디오 게임 지비(Gee Bee)를 만들었고, 후속작 개발에도 참여했습니다.
당시 일본 게임 시장은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브레이크아웃 같은 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비슷한 슈팅 게임이 넘쳐났습니다. 이와타니는 거친 그래픽과 폭력적인 내용 때문에 오락실이 남성만의 공간으로 여겨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은 폭력이 없고 밝은 분위기로, 여성과 커플도 오락실에 오게 만드는 게임을 목표로 했습니다.
여성들이 즐기는 일을 생각하다 고른 주제가 "먹기"였습니다. 주인공 모양은 한 조각을 떼어 낸 피자에서 영감을 얻었고, 이와타니는 입을 뜻하는 한자 "口(구치)"를 둥글게 다듬은 모양이라고도 설명했습니다. 개발은 1979년 초에 시작해 1년 5개월이 걸렸는데, 당시로서는 가장 긴 개발 기간이었습니다. 이와타니는 작곡가 가이 도시오 등 남코 직원 아홉 명의 도움을 받아 게임을 완성했습니다.
북미에서 이름이 "팩맨"으로 바뀐 이유도 유명합니다. "Puck"의 P를 F로 고쳐 욕설로 만드는 장난이 생길까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게임 방식
플레이어는 팩맨을 조종해 막힌 미로 안의 점을 모두 먹어야 합니다. 점을 다 먹으면 다음 판으로 넘어가고, 판 사이사이에는 팩맨과 유령이 등장하는 짧은 막간 장면이 나옵니다.
- 네 유령의 성격: 빨간 블링키는 팩맨을 곧장 쫓고, 분홍 핑키와 하늘색 잉키는 팩맨 앞쪽으로 돌아가 길목을 막으려 합니다. 주황 클라이드는 팩맨과의 거리에 따라 쫓다가 도망가기를 반복합니다. 단순한 규칙이지만 네 마리가 함께 움직이면 예측하기 어려운 압박이 됩니다.
- 파워 쿠키: 미로 네 귀퉁이의 큰 점을 먹으면 유령이 파랗게 변하고 방향을 바꿔 달아납니다. 이때 유령을 잡아먹으면 보너스 점수를 얻고, 연달아 먹을수록 점수가 커집니다. 먹힌 유령은 눈만 남아 가운데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나옵니다.
- 워프 터널: 미로 양옆의 터널로 반대편으로 순간 이동할 수 있습니다. 유령은 터널 안에서 느려지므로 도망칠 때 쓸모가 있습니다.
- 보너스 과일: 일정량의 점을 먹으면 가운데 아래에 과일이 나타나 추가 점수를 줍니다.
판이 올라갈수록 유령은 빨라지고 파워 쿠키 효과는 짧아지다가 결국 사라집니다. 256번째 판은 정수 오버플로 때문에 화면 절반이 깨져 깰 수 없는데, 이를 "킬 스크린"이라고 부릅니다. 이론상 최고 점수는 255판까지 모든 점·과일·유령을 먹고 256판에서 남은 목숨으로 점수를 최대로 얻은 3,333,360점입니다.
왜 명작인가
첫째, 게임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바꿨습니다. 전쟁이나 스포츠가 대부분이던 시기에 귀엽고 색이 밝은 캐릭터와 "먹는" 행동으로 폭넓은 사람들을 끌어들였고, 실제로 여성 이용자에게 인기를 얻었습니다. 후속작 미즈 팩맨이 여성 주인공으로 나온 것도 이 인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흥행 규모가 컸습니다. 북미에서 미드웨이는 처음 5,000대만 만들 만큼 기대가 낮았지만, 출시 1년 만에 아케이드 기판 10만 대 이상이 팔렸고 1982년에는 40만 대에 이르렀습니다. 기네스 세계 기록은 팩맨에 "가장 성공한 동전식 게임"을 포함한 여러 기록을 주었고, 2005년 기준 전 세계에 설치된 아케이드 기기 293,822대로 기록을 인정했습니다.
셋째, 캐릭터 자체가 브랜드가 된 첫 게임 가운데 하나입니다. 2009년 기네스 조사에서 미국인의 94%가 팩맨을 알아봐 마리오(93%)보다 높았습니다. 팩맨은 남코, 그리고 지금의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를 대표하는 마스코트가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팩맨은 2012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처음 소장한 비디오 게임 14편에 들어갔고, 2015년에는 스트롱 국립 놀이 박물관의 비디오 게임 명예의 전당에 올랐습니다.
시리즈·영향
첫 속편은 미국의 제너럴 컴퓨터 코퍼레이션이 개발하고 미드웨이가 1982년 내놓은 미즈 팩맨입니다. 새 미로와 움직이는 보너스 아이템, 더 빠른 속도를 더해 북미에서 크게 팔렸습니다. 남코 자체 후속작인 슈퍼 팩맨(1982)을 비롯해 횡스크롤 액션 팩랜드(1984), 쿼터뷰 시점의 팩매니아(1987), 3D 플랫포머 팩맨 월드(1999)처럼 장르를 바꾼 작품도 꾸준히 나왔습니다.
2007년 Xbox 360으로 나온 팩맨 챔피언십 에디션은 이와타니가 남코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만든 게임입니다. 네온 그래픽과 빠른 속도로 좋은 평가를 받아 DX(2010), 2(2016)로 이어졌습니다.
게임 밖에서도 영향이 넓었습니다. 1982년까지 미국에서 팩맨 관련 상품 매출이 10억 달러를 넘었고, 노래 "팩맨 피버"가 인기를 얻었으며 TV 애니메이션도 만들어졌습니다. 2010년 30주년에는 구글이 첫 화면 로고를 직접 플레이할 수 있는 팩맨으로 바꿨습니다.
지금 즐기는 법
- 팩맨 뮤지엄+: 2022년 5월 27일 PC(Steam), Nintendo Switch, PlayStation 4, Xbox One으로 나온 모음집입니다. 원작 팩맨을 포함해 시리즈 14편이 들어 있고 미션과 온라인 순위표가 있습니다.
- 공식 사이트: 반다이 남코의 팩맨 공식 사이트에서 현재 판매 중인 팩맨 게임 목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처음이라면 원작으로 네 유령의 움직임을 익힌 뒤, 챔피언십 에디션 계열처럼 속도가 빠른 현대판을 해 보면 같은 규칙이 얼마나 다르게 느껴지는지 비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