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라이크와 로그라이트의 역사 — 1980년 로그에서 하데스까지
로그라이크와 로그라이트의 뜻과 차이, 1980년 로그에서 넷핵·이상한 던전·스펠렁키·하데스까지 이어진 장르의 역사와 대표작, 설계 특징을 정리합니다.
"로그라이크"는 오늘날 게임 소개문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처음 이 말이 가리키던 게임은 글자와 기호로만 이루어진 화면에서 한 칸씩 움직이는 턴제 던전 탐험 게임이었습니다. 지금은 액션 게임, 카드 게임, 슈팅 게임에도 이 이름이 붙습니다.
이 글에서는 로그라이크라는 말이 어디에서 왔는지, 1980년대 대학 컴퓨터실에서 시작된 장르가 어떻게 일본 콘솔 게임과 2000년대 이후 인디 게임으로 퍼졌는지, 그리고 "로그라이트"라는 말이 왜 따로 생겼는지를 순서대로 정리합니다. 대표작 표와 설계 특징도 함께 살펴봅니다.
로그라이크란 무엇인가
로그라이크(Roguelike)는 '로그(Rogue)와 비슷한 게임'이라는 뜻입니다. 전통적인 로그라이크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 롤플레잉 게임을 말합니다.
- 던전의 구조와 아이템 배치가 플레이할 때마다 새로 만들어집니다(절차적 생성).
- 캐릭터가 죽으면 저장된 진행이 사라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영구적 죽음, 퍼머데스).
- 플레이어가 행동해야 시간이 흐르는 턴제 방식입니다.
- 격자(그리드) 위에서 한 칸씩 움직입니다.
배경은 대부분 『던전 앤 드래곤』 같은 테이블 롤플레잉 게임의 영향을 받은 하이 판타지입니다. 이 장르를 정확히 어떻게 정의할지는 지금도 논쟁이 있습니다. 그래서 2008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 로그라이크 개발 콘퍼런스에서 개발자와 플레이어들이 "베를린 해석(Berlin Interpretation)"이라는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이 기준은 로그, 넷핵, 앵밴드, ADOM, 크롤(Linley's Dungeon Crawl) 다섯 게임을 기준작으로 삼고, 무작위 생성·퍼머데스·턴제·격자·자원 관리 등을 "가치가 높은 요소"로 꼽았습니다. 이 요소가 하나 빠졌다고 로그라이크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고, "얼마나 로그라이크다운가"를 가늠하는 잣대로 쓰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기원: 대학 단말기에서 태어난 로그
장르의 이름이 된 『로그(Rogue)』는 1980년 무렵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타크루즈 캠퍼스의 학생이던 마이클 토이(Michael Toy)와 글렌 위크먼(Glenn Wichman)이 만들었습니다. 이후 켄 아널드(Ken Arnold)도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텍스트 어드벤처 『어드벤처(Colossal Cave Adventure)』를 즐겼지만, 매번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점을 아쉬워했습니다. 그래서 켄 아널드의 curses 라이브러리를 이용해 단말기 화면에 글자로 지도를 그리고, 매번 다른 던전이 나오는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화면에서 플레이어는 @ 기호로, 금화는 $, 드래곤은 D로 표시되었습니다. 목표는 던전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옌더의 부적(Amulet of Yendor)"을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로그는 1984년 BSD 유닉스 4.2에 포함되면서 대학과 연구소의 컴퓨터 사용자 사이에 널리 퍼졌습니다.
퍼머데스는 처음부터 의도된 장치였습니다. 저장 기능을 넣자 플레이어들이 결과가 마음에 들 때까지 불러오기를 반복했고, 개발진은 한 번 죽으면 끝나는 규칙을 넣었습니다. 마이클 토이는 이를 게임을 괴롭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선택에 무게를 싣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로그보다 먼저 나온 비슷한 게임도 있습니다. 1978년 돈 워스(Don Worth)가 애플 II용으로 만든 『비니스 애플 매너(Beneath Apple Manor)』는 무작위 던전과 턴제 전투를 갖춘 최초의 상업 로그라이크로 꼽힙니다. 다만 로그는 대학 네트워크를 통해 퍼질 수 있었기 때문에 훨씬 큰 영향을 남겼습니다. "로그라이크"라는 말 자체는 1993년 무렵 유즈넷 뉴스그룹에서 여러 게임 토론방을 하나로 묶으면서 rec.games.roguelike라는 이름을 고른 데서 자리 잡았습니다.
1980~1990년대: 핵과 모리아, 두 갈래의 변종
로그의 인기는 수많은 파생작을 낳았습니다.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핵(Hack) 계열: 1982년 미국 링컨-서드베리 고등학교 학생이던 제이 펜레이슨(Jay Fenlason)과 친구들이 『핵』을 만들었습니다. 이 코드를 이어받은 개발자들이 유즈넷으로 협업하며 1987년 『넷핵(NetHack)』을 내놓았습니다. 넷핵은 "데브팀은 모든 것을 생각해 두었다"는 말이 생길 만큼 아이템과 상황의 조합이 방대한 게임으로 유명합니다. 1994년 독일의 토마스 비스쿠프(Thomas Biskup)가 만든 『ADOM(Ancient Domains of Mystery)』은 넷핵에서 영향을 받으면서도 이야기와 퀘스트를 강화했습니다.
모리아(Moria) 계열: 1983년 오클라호마 대학교의 로버트 앨런 코에네케(Robert Alan Koeneke)가 톨킨 세계관을 바탕으로 『모리아』를 만들었습니다. 지상에 상점이 있는 마을을 둔 점이 특징이었습니다. 1990년에는 영국 워릭 대학교 학생들이 모리아를 확장한 『앵밴드(Angband)』를 만들었고, 이후 수십 개의 변종이 갈라져 나왔습니다.
이 시기 게임들은 대부분 소스 코드가 공개되어 있었고, 다른 개발자가 코드를 고쳐 새 버전을 내는 문화가 장르를 키웠습니다.
일본의 해석: 이상한 던전 시리즈
1993년까지 로그라이크는 거의 컴퓨터에서만 즐기는 장르였습니다. 이를 콘솔로 옮긴 대표 사례가 춘소프트(Chunsoft)의 "이상한 던전(Mystery Dungeon)" 시리즈입니다. 『드래곤 퀘스트』를 만들며 서양식 롤플레잉을 일본 콘솔 사용자에게 맞게 다듬었던 춘소프트는 같은 일을 로그에도 하려 했습니다. 그 결과 1993년 슈퍼 패미컴용 『토르네코의 대모험: 이상한 던전』이 나왔고, 이후 『풍래의 시렌』과 포켓몬 시리즈 외전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상한 던전 시리즈는 서양의 베를린 해석 로그라이크와 달리 퍼머데스가 덜 엄격했습니다. 쓰러지면 던전 입구로 돌아가지만, 아이템을 맡겨 두거나 다시 찾을 수단을 제공하는 식이었습니다. 이 방식은 뒤에 나오는 로그라이트의 "실패해도 일부는 남는" 구조와 닮은 점이 있습니다.
같은 시기 서양에서는 그래픽 게임이 주류가 되면서 글자 기반 로그라이크가 상대적으로 조용해졌습니다. 그러나 1996년 블리자드의 『디아블로』를 만든 데이비드 브레빅(David Brevik)은 로그·넷핵 같은 게임에서 무작위 던전과 전리품 구조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2000년대 이후: 로그라이트의 등장
2000년대 후반부터 인디 개발자들이 로그라이크의 요소를 다른 장르와 섞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게임은 절차적 생성과 퍼머데스는 유지하되, 턴제와 격자 이동은 버리고 실시간 액션이나 플랫포머 방식을 택했습니다. 전통 로그라이크 팬들 사이에서는 이런 게임까지 로그라이크라고 부르면 말의 뜻이 흐려진다는 의견이 나왔고, 그래서 "로그라이트(Rogue-lite)" 또는 "로그라이크라이크(Roguelike-like)"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전환점으로 자주 꼽히는 게임은 데릭 유(Derek Yu)가 2008년에 공개한 『스펠렁키(Spelunky)』입니다. 무작위로 만들어지는 동굴을 탐험하는 플랫포머로, 로그라이크의 깊이와 플랫포머의 손쉬운 조작을 합치려 한 작품입니다. 이후 에드먼드 맥밀런(Edmund McMillen)의 『아이작의 번제(The Binding of Isaac)』(2011), 서브셋 게임즈의 『FTL: Faster Than Light』(2012) 등이 이어지며 장르가 크게 넓어졌습니다.
로그라이트의 큰 특징은 메타 진행입니다. 한 번의 도전(런)이 짧고, 실패해도 일부 재화나 해금 요소가 남아 다음 도전을 조금 쉽게 만들어 줍니다. 셀러 도어 게임즈의 『로그 레거시(Rogue Legacy)』(2013)는 죽은 캐릭터의 후손이 재산을 물려받아 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 구조를 분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대표작 한눈에 보기
| 연도 | 게임 | 개발 | 의의 |
|---|---|---|---|
| 1978 | 비니스 애플 매너 | 돈 워스 | 최초의 상업 로그라이크로 꼽힘 |
| 1980 | 로그 | 마이클 토이, 글렌 위크먼 | 장르의 이름이 된 원조 |
| 1987 | 넷핵 | 넷핵 데브팀 | 방대한 상호작용, 공개 협업 개발 |
| 1990 | 앵밴드 | 앨릭스 커틀러, 앤디 애스트랜드 | 모리아 계열의 대표, 수많은 변종 |
| 1993 | 토르네코의 대모험: 이상한 던전 | 춘소프트 | 콘솔용 로그라이크의 대중화 |
| 2008 | 스펠렁키 | 데릭 유 | 플랫포머와 로그라이크의 결합 |
| 2011 | 아이작의 번제 | 에드먼드 맥밀런, 플로리안 힘슬 | 슈팅 로그라이트의 대표 |
| 2017 | 슬레이 더 스파이어(앞서 해보기) | 메가크릿 | 로그라이크 덱빌딩 유행 |
| 2020 | 하데스 | 슈퍼자이언트 게임즈 | 반복 플레이에 이야기를 엮음 |
| 2022 | 뱀파이어 서바이버즈 | poncle | 자동 공격형 서바이버 장르 확산 |
설계 특징: 왜 다시 하고 싶어지는가
로그라이크와 로그라이트의 설계에는 몇 가지 공통된 원리가 있습니다.
- 매번 다른 판: 절차적 생성은 원래 메모리가 적은 컴퓨터에서 모든 층을 저장하지 않으려는 기술적 해법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같은 판이 반복되지 않아 오래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잃을 것이 있는 선택: 퍼머데스 때문에 물약 한 병, 계단 하나를 내려갈지 말지가 중요한 결정이 됩니다.
- 지식이 쌓이는 성장: 캐릭터는 사라져도 플레이어는 몬스터의 패턴과 아이템의 효과를 배웁니다. 전통 로그라이크에서는 같은 물약이 판마다 다른 색으로 나와 그 정체를 매번 알아내야 했습니다.
- 조합에서 생기는 이야기: 여러 시스템이 겹치면서 개발자가 미리 쓰지 않은 상황이 생깁니다. 플레이어가 이런 경험을 서로 공유하는 문화도 장르의 일부입니다.
- 짧은 런과 메타 진행(로그라이트): 한 판을 짧게 만들고 실패해도 남는 보상을 줘서, 어려움을 덜고 다음 도전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전통 로그라이크와 로그라이트의 차이는 다음처럼 정리할 수 있습니다.
| 항목 | 전통 로그라이크 | 로그라이트 |
|---|---|---|
| 진행 방식 | 턴제, 격자 이동 | 실시간 액션·카드·슈팅 등 다양 |
| 죽음 이후 | 모든 진행이 사라짐 | 일부 재화·해금이 남음 |
| 한 판 길이 | 길게는 수십 시간 | 대체로 짧음 |
| 표현 | 아스키 문자, 타일 | 그래픽 중심 |
오늘날의 로그라이크
지금 로그라이크 요소는 거의 모든 장르에 들어가 있습니다. 메가크릿의 『슬레이 더 스파이어』는 카드로 전투하는 로그라이크 덱빌딩을 대중화했고, 2014년 『드림 퀘스트』가 이 형식의 첫 사례로 꼽힙니다. 모션 트윈의 『데드 셀』은 메트로배니아와 로그라이트를 합쳤고, 『뱀파이어 서바이버즈』는 캐릭터가 자동으로 공격하고 플레이어는 이동과 강화 선택만 하는 간단한 형식으로 많은 비슷한 게임을 낳았습니다. 포커 패를 바탕으로 한 『발라트로』(2024)처럼 카드·퍼즐 쪽으로 넓어진 사례도 있습니다.
슈퍼자이언트 게임즈의 『하데스』는 죽고 다시 도전하는 반복 자체를 이야기의 일부로 만들어, 어려운 장르를 꺼리던 플레이어도 끌어들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후속작 『하데스 II』는 2024년 앞서 해보기를 거쳐 2025년 정식 출시되었습니다.
한편 전통 방식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던전 크롤 스톤 수프』처럼 베를린 해석에 가까운 게임이 계속 개발되고 있고, 넷핵도 업데이트가 이어졌습니다. 2005년 유즈넷에서 시작된 "7일 로그라이크 챌린지(7DRL)"는 매년 열리며 새로운 개발자를 키우는 행사가 되었습니다.
로그라이크의 역사는 "같은 게임을 몇 번이고 새롭게 즐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쌓여 온 과정입니다. 글자로 그린 던전에서 시작한 이 질문은 지금도 여러 장르에서 다른 방식으로 답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