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RPG·핵앤슬래시란? 디아블로부터 몬스터 헌터까지 장르 정리
실시간으로 직접 싸우며 성장하는 액션 RPG와, 몰려오는 적을 베고 아이템을 줍는 핵앤슬래시. 두 말의 정확한 뜻과 기원, 하위 분류, 대표작, 설계 포인트를 정리합니다.
액션 RPG는 턴을 기다리거나 메뉴에서 명령을 고르는 대신, 실시간으로 직접 캐릭터를 움직여 싸우는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한국에서는 '핵앤슬래시'라는 말과 함께 자주 쓰이는데, 특히 『디아블로』처럼 쿼터뷰 시점에서 몰려오는 적을 쓸어 담고 아이템을 줍는 게임을 가리킬 때 많이 씁니다.
이 글에서는 액션 RPG와 핵앤슬래시가 각각 무엇을 뜻하는지, 장르가 어디서 시작했는지, 어떤 갈래로 나뉘는지, 대표작은 무엇인지 정리합니다. 이어서 이 장르를 만들 때 생각할 점과 어떤 사람에게 맞는지도 살펴봅니다. RPG 전체의 흐름은 RPG의 역사를, 디아블로 시리즈는 디아블로 글을 참고하세요.
액션 RPG의 정의와 핵심 재미
액션 RPG는 액션 게임과 RPG의 핵심 요소를 합친 장르입니다. 턴제나 메뉴 선택 전투 대신 실시간 전투를 쓰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반응 속도와 손놀림이 결과에 영향을 줍니다. 동시에 레벨, 능력치, 스킬 트리, 장비처럼 캐릭터의 수치를 키우는 RPG 요소가 있습니다.
비슷해 보이는 '액션 어드벤처'와의 차이도 여기에 있습니다. 『젤다의 전설』 같은 액션 어드벤처는 플레이어가 아이템과 도구를 얻으며 나아가지만, 캐릭터를 만들고 능력치와 스킬을 직접 키우는 RPG식 성장은 적습니다. 액션 RPG는 실시간 전투 위에 이런 성장 체계를 얹은 게임입니다. 실시간 전투를 쓰는 MMORPG도 넓게 보면 액션 RPG에 속합니다.
핵심 재미는 두 가지가 겹치는 데 있습니다. 하나는 손맛, 즉 직접 피하고 때리며 이기는 감각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장, 즉 더 좋은 장비와 스킬로 캐릭터가 눈에 띄게 강해지는 감각입니다. 실력이 늘면서 캐릭터도 강해지니, 두 가지 성취감을 함께 얻을 수 있습니다.
핵앤슬래시는 무엇인가
'핵앤슬래시(hack and slash)'는 원래 테이블탑 RPG에서 이야기나 대화보다 전투에 몰두하는 플레이 방식을 가리키던 말입니다. 이 말이 머드와 MMORPG, 컴퓨터 RPG로 넘어오면서 '적을 베고 쓰러뜨리는 데 집중하는 게임'이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장르마다 다른 뜻으로 쓰입니다.
- RPG 쪽의 핵앤슬래시: 디아블로처럼 쿼터뷰 시점에서 많은 적을 상대하고, 떨어진 아이템을 모으며 캐릭터를 키우는 게임. 한국에서 '핵앤슬래시'라고 하면 대부분 이쪽을 뜻합니다.
- 액션 게임 쪽의 핵앤슬래시: 『데빌 메이 크라이』, 『갓 오브 워』, 『베요네타』처럼 칼 같은 근접 무기로 화려한 연속기를 쓰는 3인칭 액션 게임. 영어권에서는 '캐릭터 액션'이라고도 부릅니다.
두 갈래는 서로 거의 관계가 없지만, 액션 RPG 중에는 두 요소를 함께 갖춘 게임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핵앤슬래시는 주로 앞의 RPG 쪽입니다.
기원: 1984년 일본과 1996년 디아블로
액션 RPG라는 장르는 1984년 일본 개발사들이 RPG에 아케이드식 액션을 섞으면서 자리 잡았다고 평가됩니다. 그해 아케이드 게임 『드루아가의 탑』이 일본에서 성공했고, 그 영향을 받아 니혼 팔콤의 『드래곤 슬레이어』와 T&E 소프트의 『하이드라이드』가 나왔습니다. 하이드라이드는 넓은 필드를 갖춘 첫 액션 RPG로 꼽힙니다. 1986년 『젤다의 전설』은 엄밀히는 액션 어드벤처지만, 몸통 박치기 대신 공격 버튼으로 칼을 휘두르는 방식과 넓은 세계 탐험으로 이후 많은 액션 RPG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1987년에는 니혼 팔콤의 『이스』가 시작되었고, 1993년 스퀘어의 『성검전설 2(시크릿 오브 마나)』는 실시간 전투에 여러 명이 언제든 끼어드는 협동 플레이를 더했습니다.
PC 쪽 전환점은 1996년 블리자드 노스의 『디아블로』였습니다. 클릭 한 번으로 이동하고 공격하는 단순한 조작, 무작위로 만들어지는 던전과 아이템, 그리고 함께 공개된 배틀넷의 온라인 협동이 결합되었습니다. 디아블로의 영향이 워낙 커서, 일부에서는 '액션 RPG'를 디아블로식 게임만 가리키는 말로 쓰기도 합니다. 디아블로 자신은 『로그』 계열 로그라이크인 『모리아』, 『앵밴드』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2000년 『디아블로 II』는 직업의 다양성과 래더, 깊어진 아이템 체계로 '아이템 파밍'을 장르의 기둥으로 굳혔습니다.
하위 분류와 특징
| 갈래 | 특징 | 대표 예 |
|---|---|---|
| 핵앤슬래시(디아블로형) | 쿼터뷰, 대량의 적, 무작위 아이템 파밍 | 디아블로, 패스 오브 엑자일 |
| 오픈 월드 액션 RPG | 넓은 세계 탐험과 퀘스트, 1·3인칭 전투 | 엘더 스크롤 시리즈, 위처 3 |
| 일본식 액션 RPG | 이야기와 캐릭터 중심, 빠른 전투 | 이스, 킹덤 하츠 |
| 헌팅 액션 | 큰 몬스터를 사냥해 소재로 장비 제작, 협동 | 몬스터 헌터 |
| 소울라이크 | 높은 난도, 죽음을 통한 학습, 체크포인트 | 다크 소울, 엘든 링 |
| 로그라이트 액션 RPG | 짧은 반복 도전과 영구 성장 | 하데스 |
| 무쌍형 | 수백 명의 적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액션 | 진·삼국무쌍 |
| 슈터 RPG | 사격 위주 전투와 RPG 성장 | 보더랜드, 매스 이펙트 |
소울라이크는 따로 소울라이크 글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대표작
| 연도 | 게임 | 개발사 | 특징 |
|---|---|---|---|
| 1984 | 하이드라이드 | T&E 소프트 | 넓은 필드를 갖춘 초기 액션 RPG |
| 1987 | 이스 | 니혼 팔콤 | 빠른 전투와 음악, 오래 이어진 시리즈 |
| 1993 | 성검전설 2 | 스퀘어 | 링 메뉴와 여럿이 함께하는 실시간 전투 |
| 1996 | 디아블로 | 블리자드 노스 | 클릭 전투, 무작위 던전·아이템, 배틀넷 협동 |
| 2000 | 디아블로 II | 블리자드 노스 | 아이템 파밍을 장르의 중심으로 |
| 2004 | 몬스터 헌터 | 캡콤 | 협동 사냥과 소재 기반 장비 제작 |
| 2005 | 던전앤파이터 | 네오플 | 횡스크롤 벨트 액션과 RPG 성장의 결합 |
| 2013 | 패스 오브 엑자일 | 그라인딩 기어 게임즈 | 방대한 스킬 트리와 무료 서비스 |
| 2020 | 하데스 | 슈퍼자이언트 게임즈 | 로그라이트 구조와 이야기의 결합 |
| 2023 | 디아블로 IV |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 공유 오픈 월드와 시즌제 |
이 밖에도 『위처 3』(2015), 『몬스터 헌터: 월드』(2018), 『원신』(2020), 『엘든 링』(2022) 등이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힙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몬스터 헌터: 월드는 캡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단일 타이틀이 되었습니다. 던전앤파이터는 던전앤파이터 글에서 따로 다룹니다.
설계 포인트
1. 타격감과 반응성
액션 RPG의 첫인상은 '때리는 맛'입니다. 입력하자마자 동작이 나오는지, 맞은 적이 확실히 반응하는지, 소리와 화면 흔들림이 적절한지가 손맛을 결정합니다. 반대로 소울라이크처럼 동작을 취소할 수 없게 만들어 신중함을 요구하는 설계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의도가 분명해야 합니다.
2. 성장이 전투를 바꾸게
레벨이 올라 숫자만 커지면 금방 지루해집니다. 새 스킬이 전투 방식을 바꾸고, 장비 옵션이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도록 만들어야 성장이 체감됩니다. 패스 오브 엑자일의 거대한 스킬 트리는 이 방향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사례입니다.
3. 아이템 파밍의 보상 주기
핵앤슬래시에서 아이템은 곧 보상입니다. 너무 자주 좋은 아이템이 나오면 가치가 떨어지고, 너무 드물면 의욕이 꺾입니다. 등급별 색상, 드롭 연출, 옵션의 무작위성으로 '다음엔 더 좋은 게 나올지 모른다'는 기대를 유지합니다.
4. 경제와 수익 모델
아이템 거래가 활발한 게임에서는 경제가 무너지기 쉽습니다. 디아블로 III는 2012년 출시하며 현금으로 아이템을 사고파는 경매장을 넣었지만, 직접 아이템을 찾는 재미를 해친다는 비판 속에 2014년 이를 닫았습니다. 이후 대대적인 아이템 체계 개편이 이어졌고, 이 사례는 액션 RPG의 수익 모델을 설계할 때 자주 인용되는 교훈이 되었습니다.
5. 반복을 지탱하는 구조
같은 던전을 여러 번 도는 장르인 만큼, 무작위 맵, 난이도 단계, 시즌제 초기화 같은 장치로 반복에 새로움을 더해야 합니다. 시즌제는 모든 이용자가 같은 출발선에서 다시 시작하게 해 꾸준히 복귀 동기를 만듭니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
- 턴을 기다리는 전투보다 직접 움직이는 전투를 좋아하는 사람
- 좋은 장비를 모으고 빌드를 완성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
- 친구와 함께 사냥하는 협동 플레이를 원하는 사람
- 실력과 캐릭터 성장을 함께 느끼고 싶은 사람
반대로 천천히 생각하며 싸우는 것을 좋아한다면 JRPG나 택틱스 RPG가 더 잘 맞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액션 RPG
오늘날 액션 RPG는 RPG 가운데 가장 넓은 영역이 되었습니다. 대형 오픈 월드 게임 대부분이 액션 RPG의 형태를 띠고, 『원신』처럼 오픈 월드 액션과 가챠를 결합한 무료 게임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디아블로 IV처럼 시즌마다 새 규칙을 더하는 서비스형 핵앤슬래시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편 로그라이크와의 결합도 활발합니다. 디아블로가 로그라이크에서 영감을 받았듯, 이제는 하데스 같은 로그라이트 게임이 다시 디아블로식 액션 RPG에서 영향을 받습니다. 몰려오는 적을 쓸어 담는 쾌감은 뱀서류 같은 새 장르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시간 전투와 성장이라는 두 기둥만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 변할 수 있다는 점이 액션 RPG의 가장 큰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