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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경제 설계: 골드는 어디서 생기고 어디로 사라지나

재화의 수도꼭지와 배수구, 인플레이션, 이브 온라인의 경제학자, 디아블로 3 경매장의 교훈, 이중 화폐까지. 게임 경제를 설계하는 기본 원리를 실제 사례로 쉽게 정리합니다.

#게임 경제 #가상 경제 #인플레이션 #이브 온라인 #디아블로 3 #게임 디자인

몬스터를 잡으면 골드가 떨어지고, 상점에서 그 골드로 물약을 삽니다. 너무 익숙해서 별생각 없이 지나치는 장면이지만, 그 뒤에는 꽤 정교한 설계가 숨어 있습니다. 골드가 너무 쉽게 생기면 금방 의미가 없어지고, 너무 귀하면 플레이어는 아무것도 살 수 없어 답답해합니다. 여럿이 함께 하는 온라인 게임이라면 문제는 훨씬 복잡해집니다.

이 글에서는 게임 경제를 이루는 기본 구조인 '수도꼭지와 배수구'에서 출발해, 인플레이션이 왜 생기는지, 플레이어끼리 거래하는 경제가 어떤 문제를 겪는지, 그리고 이브 온라인과 디아블로 3 같은 게임이 어떤 교훈을 남겼는지 살펴봅니다. 마지막에는 혼자 하는 게임에서도 경제 설계가 왜 중요한지 정리합니다.

게임 경제의 기본: 수도꼭지와 배수구

게임 경제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비유는 욕조입니다.

  • 수도꼭지(source, faucet): 재화가 새로 생겨나는 곳입니다. 몬스터 처치 보상, 퀘스트 보상, 일일 출석 보상, 자원 채집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 배수구(sink): 재화가 게임 밖으로 사라지는 곳입니다. 상점에서 소모품 구입, 장비 수리비, 강화 비용, 거래 수수료, 이동 요금 같은 것들입니다.
  • 욕조의 물: 지금 플레이어들이 가지고 있는 재화의 총량입니다.

수도꼭지가 배수구보다 크면 물이 넘칩니다. 즉 재화가 계속 쌓입니다. 대부분의 게임은 돈을 버는 방법은 많지만 돈을 없애는 방법은 적기 쉽습니다. 플레이어가 즐겁게 돈을 벌 수 있게 하는 것은 쉽지만, 돈을 쓰게 만드는 것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 골드가 넘치면 생기는 일

재화가 계속 쌓이면 현실과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같은 골드로 살 수 있는 것이 줄어드는 인플레이션입니다. 플레이어끼리 물건을 사고파는 게임이라면 시장 가격이 끝없이 오릅니다.

인플레이션이 게임에 주는 피해는 생각보다 큽니다.

  1. 신규 플레이어가 불리해집니다. 오래 한 사람들은 골드가 넘치지만, 새로 시작한 사람은 시장 가격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2. 보상이 의미를 잃습니다. 퀘스트 보상 100골드가 시장에서 사과 한 개 값이 되면, 그 퀘스트를 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3. 불법 거래가 늘어납니다. 게임 안에서 돈 모으기가 힘들어지면 현금으로 골드를 사려는 수요가 생깁니다.

여기에 '골드 파밍'이 더해지면 상황은 더 나빠집니다. 자동 프로그램이나 전문 업자가 골드를 대량으로 찍어 내면 수도꼭지가 비정상적으로 커지고, 버그를 악용해 돈을 무한히 만들어 내는 경우에는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비슷한 현상으로 '머드플레이션(mudflation)'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새 업데이트마다 더 좋은 장비가 나오면서 예전 장비의 가치가 계속 떨어지는 현상으로, 오래 서비스하는 온라인 게임이 거의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배수구를 설계하는 방법

좋은 배수구는 플레이어가 '빼앗겼다'가 아니라 '썼다'고 느끼게 만듭니다. 흔히 쓰이는 배수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배수구예시장점주의할 점
소모품물약, 탄약, 음식자연스럽고 꾸준하다너무 비싸면 답답하다
유지비장비 수리, 집 세금많이 쓸수록 많이 빠진다벌금처럼 느껴질 수 있다
거래 수수료경매장 판매 수수료거래가 많을수록 효과가 크다높으면 직거래로 빠진다
확률 강화장비 강화, 재련많은 재화를 흡수한다실패의 좌절이 크다
꾸미기의상, 가구, 탈것강제가 아니라 즐거운 소비다원하는 사람만 쓴다
파괴와 손실전투에서 잃는 장비시장에 계속 수요가 생긴다손실을 받아들일 장르여야 한다

디아블로 3의 금화 경매장은 최종 판매가의 15%를 수수료로 떼었습니다. 거래가 일어날 때마다 일정 비율의 골드가 사라지는 구조라, 거래가 활발할수록 배수구도 커집니다.

플레이어가 만드는 경제: 이브 온라인

경제를 게임의 중심에 놓은 대표적인 사례는 CCP 게임즈의 우주 MMO 이브 온라인입니다. 이 게임의 경제는 대부분 플레이어가 움직입니다. 플레이어가 직접 원자재를 캐고, 그것으로 거의 모든 함선과 장비를 만들며, 시장에서 사고팝니다. 게임 속 돈과 물자의 양이 고정되어 있지 않아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이고, 대규모 시장 조작이나 사기도 일어납니다.

이브 온라인의 경제가 돌아가는 핵심 이유 중 하나는 '파괴'입니다. 전투에서 함선이 격추되면 그 배는 사라지고, 누군가는 다시 배를 사야 합니다. 그래서 함선을 만드는 플레이어에게 꾸준한 수요가 생깁니다. 수천 명이 한 항성계에서 21시간 동안 싸운 'B-R5RB 전투'가 게임 역사상 가장 크고 비싼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정도입니다.

CCP는 2007년에 경제학자 에이올퓌르 구드뮌손(Eyjólfur Guðmundsson)을 고용해 게임 속 경제를 관리하게 했는데, 이는 게임 개발사가 경제학자를 고용한 첫 사례였습니다. 또 플레이어가 적은 지역에 자원을 자동으로 더 배치해 사람들이 고르게 퍼지도록 하는 등, 경제 정책에 가까운 조정을 합니다.

현금과의 관계도 신중하게 설계했습니다. 플레이어는 현금으로 PLEX라는 아이템을 사서 게임 속 시장에 팔아 게임 화폐로 바꿀 수 있지만, 반대로 게임 화폐나 아이템을 현금으로 파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현금이 들어오는 길은 하나로 공식화하고, 나가는 길은 막은 구조입니다.

현금 경매장의 교훈: 디아블로 3

반대로 경제 설계가 게임 경험을 해친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디아블로 3(2012)의 경매장입니다. 디아블로 3는 출시 때 두 종류의 경매장을 두었습니다. 하나는 게임 속 골드로 거래하는 곳, 다른 하나는 실제 돈으로 아이템을 사고파는 곳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사행성 관련 법 때문에 현금 경매장을 뺀 채 출시되었습니다.

문제는 경매장이 게임의 핵심 재미와 부딪혔다는 점입니다. 디아블로 시리즈의 재미는 몬스터를 잡고 좋은 아이템을 '직접 얻는' 데 있는데, 경매장에서 사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면 사냥의 의미가 줄어듭니다. 전 게임 디렉터 제이 윌슨은 2013년 경매장이 게임을 "정말 해쳤다"고 말했고, 블리자드는 금화와 현금 경매장을 모두 2014년 3월 18일에 닫았습니다.

이 사례의 교훈은 분명합니다. 경제 시스템은 그 자체로 아무리 효율적이어도, 게임이 주려는 핵심 경험을 대신해 버리면 안 됩니다.

이중 화폐와 혼자 하는 게임의 경제

온라인 게임이 아니더라도 경제 설계는 중요합니다. 혼자 하는 게임에서 경제는 곧 '성장 속도'와 '선택의 무게'를 정합니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두 가지 화폐를 씁니다. 시리즈 전통의 화폐인 '벨'과 함께, 간단한 활동을 하면 쌓이는 '마일'을 두어 마일로는 가구, 레시피, 옷 같은 보상을 살 수 있게 했습니다. 마일은 "이런 활동도 해 보세요"라는 안내 역할을 겸합니다. 화폐를 둘로 나누면 각 화폐에 다른 역할을 맡길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유로운 경제 활동용으로, 하나는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보상용으로 쓰는 식입니다.

부분 유료화 게임에서는 흔히 '게임 안에서 버는 화폐'와 '현금으로 사는 화폐'를 나눕니다. 이때 개발자가 지켜야 할 선은, 현금 화폐가 게임의 핵심 재미를 건너뛰는 지름길이 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디아블로 3의 경우처럼, 돈으로 사는 쪽이 노는 쪽보다 압도적으로 효율적이면 게임이 상점이 되어 버립니다.

작은 스튜디오가 경제를 다루는 방법

저희처럼 작은 팀이 만드는 게임은 대부분 혼자 하는 게임이거나 짧은 대전 게임이라, 이브 온라인 같은 거대한 경제를 다룰 일은 없습니다. 그래도 몇 가지 원칙은 똑같이 적용됩니다.

  1. 수도꼭지와 배수구를 표로 적습니다. 한 판에 얼마를 벌고 얼마를 쓰는지 숫자로 적어 보면, 몇 시간 뒤 재화가 넘치는지 바로 보입니다.
  2. 쓸 곳이 먼저입니다. 돈을 줄 때는 그 돈으로 무엇을 사고 싶어질지 먼저 정합니다. 쓸 곳 없는 돈은 숫자일 뿐입니다.
  3. 현금이 재미를 대신하지 않게 합니다. 결제는 시간을 아끼는 선택이 될 수는 있어도, 놀이 자체를 건너뛰는 버튼이 되면 안 됩니다.
  4. 처음 들어오는 문턱을 낮춥니다. 플레이어가 경제에 익숙해지기 전에 돈 걱정부터 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액션장기는 처음 10판을 무료로 할 수 있게 해서, 결제를 고민하기 전에 게임이 자기에게 맞는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게 했습니다.

마치며

게임 경제는 숫자 놀음처럼 보이지만, 결국 플레이어가 느끼는 보람의 크기를 정하는 일입니다. 100골드를 받았을 때 기쁜지, 아무렇지 않은지는 그 게임의 수도꼭지와 배수구가 결정합니다. 잘 설계된 경제에서는 작은 보상에도 의미가 있고, 큰 소비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참고 자료

케케스튜디오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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